2020년 2월 24일 인도 서부 구자라트주 아마다바드(Ahmedabad)의 세계 최대 크리켓 경기장인 ‘사르다르 파텔 스타디움’은 마치 미국 어느 도시의 대선(大選) 유세장 같았다. 10만 군중이 운집한 이 경기장에는 미국 성조기와 ‘TRUMP’ 글씨가 크게 새겨진 대형 플래카드가 관중석 중앙에 걸리고, ‘위대한 국가들, 더 위대한 우정(GREAT COUNTRIES, GREATER FRIENDSHIP)’이란 문구가 스타디움 중간 벽면을 가득 채웠다. ‘나마스테(당신을 존중합니다) 트럼프’라 명명된 이날 환영행사는 지난해 9월 나렌드라 모디 인도 총리의 방미 때 미국이 텍사스에서 5만 군중이 모인 가운데 진행한 ‘하우디 모디(Howdy Modi·안녕 모디)’ 행사의 답례였지만, 그 규모는 훨씬 컸다.
연단 위에 선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나렌드라 모디 인도 총리와 뜨겁게 포옹하고 손을 번쩍 치켜들었다. 이어 그는 “인도가 번영된 국가로 부상한 것은 세계 모든 나라에 대한 모범이며 이번 세기의 뛰어난 업적이다. 여러분들은 민주적 국가로서, 그리고 평화적인 국가로서 그것을 해냈으며, 관용적인 국가이자 위대하고 자유로운 국가로서 그것을 해냈다는 점이 무엇보다 고무적이다”라고 인도를 한껏 추켜세웠다. 트럼프는 이어 “억압과 협박으로 강대국이 된 나라도 있다”고 말함으로써 사실상 인도의 ‘민주주의’로 중국의 ‘전체주의’를 공격했다.
트럼프의 연설에서 보듯이, 그의 이번 방문은 ‘인도와의 관계 강화’를 통한 ‘중국 견제’에 초점이 맞춰졌다. 무엇보다 양국은 군사협력에서 ‘통 큰’ 거래를 성사시켰다. 트럼프는 2020년 2월 24일 연설에서 “우리가 군사적 협력을 지속적으로 구축해 가는 가운데, 미국은 지구상에서 가장 뛰어나고 강력한 군사 장비를 인도에 제공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 우리는 항공기, 미사일, 로켓, 함정 등 이제까지 만들어진 무기 중 최고를 만든다.
여기에는 첨단 방공(防空)시스템과 무장 혹은 비무장의 항공기도 포함된다. 나는 내일 우리 대표단이 최첨단 군사용 헬기와 다른 장비 등 30억 달러 이상의 무기를 인도군에 판매하는 계약에 사인할 것이란 사실을 기쁜 마음으로 발표한다”고 밝혔다. 인도가 구매키로 한 미국산 군사장비 중에는 첨단 해상작전 헬기 MH-60R 시호크 24대(26억 달러)와 세계 최강의 공격 헬기로 평가받는 아파치 6대(8억달러), 통합방공망시스템(IADWS)이 포함된 것으로 전해졌다.
‘인도-태평양전략’과 ‘일대일로’가 맞부딪치다
양국 간 군사협력이 주목받는 이유는, 미국의 인도-태평양전략과 인도의 중국 견제전략이 맞아떨어지는 접점이 군사 부문이기 때문이다. 트럼프 정부의 ‘인도-태평양전략’은 전임 오바마 정부의 ‘아시아 재 균형(Rebalancing Asia)’ 전략에 인도가 추가된 개념이다. 이 전략 개념의 지적재산권은 사실상 일본 아베에게 있다. 그는 총리에 취임하기 전인 2006년부터 ‘자유롭고 개방적인 인도-태평양(free and open Indo-Pacific)’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당시 미국은 조지 W 부시(아들 부시) 대통령 시절로 아베의 주장에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다. 그러나 트럼프 대통령은 2017년 취임하면서 ‘힘을 통한 평화(Peace through Power)’를 내세우고 오바마의 ‘아시아 재 균형’ 정책 대신 ‘인도-태평양전략’을 내걸었다.
트럼프 정부는 2017년 12월 17일 국가안보전략(NSS)을 발표한 데 이어, 2018년 1월 국가국방전략(NDS), 2019년 6월 ‘인도-태평양전략보고서(IPSR·Indo-Pacific Strategy Report)’ , 2020년 6월 1일 중화인민공화국에 대한 미국의 전략적 접근(US Strategic Approach to the People’s Republic of China) 등을 차례로 공표하여 이 지역에 대한 미국의 안보 구상을 밝혔다.
이 안보 구상에서 미국이 제시한 기본 원칙은 ‘국가 크기에 상관없이 모든 국가는 다른 국가의 억압을 받지 않고 자유롭게 주권을 행사하고, 편안하고(safe), 안전하며(secure), 번영하며(prosperous), 자유롭고, 개방된 인도-태평양 지역을 만든다’는 것이다. 이를 달성하기 위해 미국은 법치와 시민사회의 발전, 투명한 통치, 공정한 경쟁을 제시하고, 어느 한 국가가 이 지역을 통제하는 것을 저지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러한 원칙과 수단이 겨냥하는 위협 국가는 바로 중국과 러시아, 그리고 북한이다.
미국은 특히 중국을 ‘약속을 지키지 않는 국가’로 간주했다. 2015년 시진핑 주석이 “남중국해의 군사화를 추진하지 않겠다”고 약속했으나 인공섬을 건설해 이 약속을 어겼고, 대만에 대한 무력 불사용을 강조했으나 실제로는 군사력 사용을 준비 중인 모습이 발견되었다는 것이다. 남중국해의 인공섬은 항공기 이착륙이 가능한 활주로를 건설하여 사실상 가라앉지 않는 항공모함이 되었다. 또 2018년에는 대함 순항미사일(YJ-12B)까지 배치하여 이 해역에서 미군의 우세를 크게 위협하고 있다. 이 미사일은 546㎞ 반경의 미 항모와 함정을 공격할 수 있다.
중국의 군사력 강화는 2013년 시작된 시진핑의 일대일로(一帶一路) 전략 중 해상 실크로드(一路) 계획과도 밀접하게 연결돼 있다. ‘일로’는 중국 해안에서부터 동남아와 서남아를 지나 중동과 아프리카를 거쳐 유럽까지 이어지는 해상 물류교통망 건설 계획이다. 총 1,000여 개의 일대일로 프로젝트 가운데는 34개 국가에 76개 항만을 건설하는 계획이 포함돼 있다. 이들 항만의 건설은 중국의 국영 건설업체가 중국의 자금과 자재, 노동자를 써서 진행하는 것으로 국내 건설자재의 재고 소진을 통한 내수 진작으로 경제성장률 6% 달성에 기여한다.
하지만 더욱 중요한 것은 이들 항구 건설 과정에서 현지 정권을 친(親)중국화하고 중국 해군함정의 입출항을 보장받음으로써 사실상 군사기지화하고 있다는 점이다. 76개 항만이 완공되면 중국은 남중국해에서부터 인도양까지 해군력을 투사할 수 있다. 결국 ‘일대일로’는 중국의 군사력을 남중국해와 인도양에 진출시켜 미국의 봉쇄망을 무력화하고 미국의 해상패권에 도전하겠다는 야심 찬 계획이다.
이탈리아가 중국의 일대일로(一帶一路·육해상 실크로드) 사업에서 연내 탈퇴할 뜻을 미국에 내비쳤다고 블룸버그통신이 2023년 5월 10일(현지 시각) 보도했다. G7(주요 7국)인 이탈리아가 이탈할 경우 올해 10주년을 맞은 중국의 일대일로 사업은 큰 타격을 입게 된다. 시진핑 정권의 해외 영향력 확대를 위한 프로젝트인 일대일로는 아시아를 넘어 유럽·아프리카까지 육로(一帶)와 해로(一路)로 잇는 사업이다. 참여국에 도로와 철도를 깔고 항만과 공항을 짓는 기반시설 투자가 핵심이다.
블룸버그에 따르면 조르자 멜로니 이탈리아 총리는 지난 4일 로마에서 케빈 매카시 미 하원의장을 만나 “최종 결정을 내린 것은 아니나 정부 차원에서 일대일로에서 맡은 역할을 철회하는 것을 선호하고 있다”고 말했다. 프라하를 방문 중인 멜로니 총리는 기자들과 만나 “우리는 아직 결정을 내리지 않았고, 논의는 열려 있다”면서도 자신은 애초 일대일로 가입에 반대하는 입장이었음을 거듭 밝혔다고 로이터는 전했다.
중국은 즉각 반대 입장을 밝혔다. 왕원빈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10일 정례 브리핑에서 “중국과 이탈리아가 정부 간 일대일로 공동 건설 협력 문서에 서명한 이후 풍성한 성과를 거뒀다”면서 “양국은 일대일로 협력의 잠재력을 한층 더 발굴해야 한다”고 했다.
이탈리아는 2019년 3월 G7 중 처음이자 유일하게 중국과 일대일로 사업 협정을 맺었다. 주세페 콘테 당시 총리는 미국의 반대를 무릅쓰고 이탈리아를 국빈 방문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에너지·항만·항공우주 등 분야의 협력을 담은 양해각서(MOU)를 체결하고, 일대일로 참여를 공식화했다.
이탈리아가 일대일로 탈퇴를 고려하는 이유 중 하나는 예상보다 경제적 이익이 적기 때문이다. 이탈리아의 대(對)중국 수출은 2019년 130억유로에서 지난해 160억유로로 소폭 증가한 반면, 중국의 대이탈리아 수출은 같은 기간 2배 가까이 늘었다. 대만과 협력을 강화해야 하는 상황도 영향을 끼쳤다. 이탈리아의 주력 산업인 자동차 제조업은 첨단 반도체 생산 기지인 대만 등으로부터 안정적인 반도체 공급이 필수적이다.
중국은 최근 일대일로 사업에 힘을 쏟고 있다. 오는 2023년 5월 18~19일 실크로드 발원지인 중국 시안에서 카자흐스탄·키르기스스탄 등 5국이 참여하는 중국·중앙아시아 정상회의가 열린다. 지난 6일에는 탈레반 정부가 들어선 아프가니스탄을 ‘중국·파키스탄 경제 회랑’(CPEC) 사업에 참여시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