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러한 에이자 장관의 대만 방문과 언행은 미국과 대만 관계가 새로운 궤도에 오르고 있음을 보여주는 상징적인 사건이다. 미국은 1979년 단교 뒤 대만과는 공식 외교 접촉은 자제해왔지만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들어서면서 상황이 변해왔다. 2016년 5월 차이잉원(蔡英文) 대만 총통이 첫 취임(2020년 1월 재선)하고 그해 11월의 미국 대통령 선거에서 도널드 트럼프가 당선(취임은 2017년 1월)되면서 미국과 대만은 전략적으로 접근해왔다.
트럼프는 당선인 신분이던 그해 12월 차이 총통과 전화 회담을 했다. 미국 대통령 당선인과 대만의 총통이 전화 회담을 한 것은 1979년 미국이 대만과 단교하고 중국과 국교를 맺은 뒤 처음 있는 일이다. 2018년에는 미국과 대만 관계가 급진전했다. 미국과 대만 고위 관료들의 상호 방문과 교류를 촉진하는 ‘대만 여행법(Taiwan Travel Act)이 2018년 2월 28일 미국 의회를 통과하고 3월 16일 트럼프 대통령이 서명하면서 발효됐다.
미국 하원은 버락 오바마 대통령 시절인 2016년 9월 대만여행법을 발의하고 상원에 제출했지만 부결됐다. 하지만 대만여행법은 2017년 1월에 하원을 거쳐 5월 상원에 다시 제출됐으며, 결국 2018년 1월 하원에서 법안이 가결된 데 이어 2월 28일 상원에서도 만장일치로 통과됐다.
대만 여행법의 첫 수혜자는 대만의 차이 총통이었다. 그는 2019년 3월 말 남태평양 3개국 순방을 마치고 귀국길에 미국 하와이를 경유하며 미군 장성을 비롯한 미국 인사들과 만났다. 차이 총통은 미국의 보수 싱크탱크인 헤리티지재단 세미나에도 참석해 “미국에 F-16V 전투기와 전차 구매를 요청했다”고 직접 밝히고 “전 세계에 대만 방위에 대한 미국의 약속을 보여줄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 뒤 트럼프 행정부는 대만에 F-16V를 팔기로 했다. 이는 대만이 1992년 이후 27년 만에 처음으로 전투기 도입이 됐다.
이는 1979년 1월 1일 미·중 수교와 미·대만 단교 이후 유지됐던 워싱턴과 베이징의 관계를 뒤흔드는 사건으로 지적된다. 사실 미국은 대만과 단교하면서도 관계의 끈을 놓지 않았으며, 대만 방위를 위한 역할도 계속해왔다. 미국 의회는 1979년 미국의 대중 수교와 대만 국교단절 직후인 그해 4월 ‘대만관계법’을 제정했다. 오랜 우방이었고 제2차 세계대전에서 함께 연합국으로 싸웠던 중화민국을 배려하기 위해서다.
과거 양자가 맺었던 외교협정을 유지하고, 대만방어용 무기에 한해 대만에 미국산 무기를 제공하며, 대만 주민의 안전과 사회경제적 제도를 위협하는 무력사용 등 강제적 방식에 대항하기 위해 방어력을 유지하도록 한다는 파격적인 내용을 담았다. 이 법은 미국 국내법임에도 내용은 외교 협정에 버금간다는 평가를 받는다. 미국과 대만이 국교는 단결하면서도 군사적 동맹관계는 유지하는 것으로 보는 시각도 있다.
사실 미국과 중국은 외교 관계 수립을 전후해 1972년 2월 ‘상하이 코뮤니케(공동성명)’, 1978년 12월 ‘미·중 수교 코뮤니케’, 1982년 8월 ‘8·17 코뮤니케’ 등 3개의 코뮤니케를 발표했다. 1972년 상하이 코뮤니케는 미국이 하나의 중국을 인정한다는 내용을 처음 언급했다. 1978년 수교 코뮤니케에선 미국이 (하나의 중국 원칙을 지키기 위해) 대만과 공식적인 정치 관계는 단절하되 경제·문화적 관계만 유지하며, 미·중 양국이 국제 분쟁을 줄이고 아시아태평양 지역에서 패권을 추구하지 않는다는 내용을 담았다. 1982년 8·17 코뮤니케에선 이전 코뮤니케에서 나왔던 대만 문제를 재확인했다.
독특한 점은 1982년 8월 8·17 코뮤니케 직전에 대만과 ‘6개 보장’을 발표했다는 사실이다. 6개 보장은 ①대(對)대만 무기판매에 기한을 정하지 않고, ②무기수출 시 중국과 사전협의하지 않으며, ③양안 중재 역할을 맡지 않고, ④대만관계법을 수정하지 않으며, ⑤대만 주권에 대해 일관된 입장을 변경하지 않고 ⑥대만에 중국과의 협상을 강요하지 않는다는 내용이다. 1979년의 대만관계법과 1982년의 6개 보장은 미국과 대만 관계의 기본 원칙이 돼왔다.
상하이 공동성명은 ‘미국은 대만해협 양측의 모든 중국인들이 중국은 하나라고 생각하고 있다는 것과 대만은 중국의 일부분이라는 것을 알고 있으며 미국 정부는 이러한 입장에 이의를 제기하지 않는다’라고 명시하고 있다. 주목할 점은 ‘중국’이라고만 했을 뿐 중화인민공화국이라고 지칭하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미국이 중국이 주도하는 양안 통일은 인정하지 않는다는 내용으로도 볼 수 있다.
미국은 이렇게 국교를 단절한 대만에 민간기관인 미국주대만협회(AIT)를 상주시키면서 관계를 이어왔다. AIT는 민간기관이지만 비자 업무 등을 운영하면서 국교를 단절한 대만에서 실질적인 미국 외교공관 역할을 해왔다. 외교공관과 달리 대만의 타이베이(臺北)와 가오슝(高雄)에는 물론 미국 워싱턴에도 사무실을 유지한다.
미국은 ‘하나의 중국’을 인정하면서도 국내법을 활용해 대만을 지원해온 셈이다. 트럼프 정권이 들어서면서 대만의 전략적 활용을 더욱 강화하고 있다. 미·중 대결이 본격화하자 미국은 대만을 지렛대로 활용하고 있다. 대만은 이런 미국을 활용해 글로벌 사회에서의 전략적 가치를 더하고 있다. 고슴도치 같은 대만이 미국과 전략적 결합을 강화하면서 중국도 함부로 할 수 없는 상황이다. 이를 바탕으로 대만은 동중국해에서 거대한 ‘불침항모’로서 독자적인 생존력을 높이고 있다. ‘민주주의 가치동맹’은 미국과 대만을 이어주는 단단한 끈이 되고 있다. 대만의 21세기 생존 전략이다.
미국이 대만에 처음으로 대형 고성능 무인기를 판매할 예정이라고 로이터통신이 2020년 8월 6일(현지시간) 보도했다. 미중 갈등이 첨예한 가운데 미국이 중국을 도발하는 또 하나의 ‘사건'이 추가되게 됐다. 로이터는 미국이 대만과 최소 4대의 해상감시용 무인기 '시 가디언'(sea guardian) 판매에 대한 협상을 진행 중이라고 이 사안에 대해 잘 아는 6명의 관계자를 인용해 보도했다. 미국 제너럴 아토믹스가 제조한 시 가디언의 비행거리는 6천 해리(약 1만1천100㎞)다. 현재 대만이 보유한 자국산 무인기의 비행거리가 160 해리(300㎞)에 그치는 것과 비교해 엄청난 차이다.
로이터는 국무부가 이번 거래에 대해 암묵적으로 동의하고 있으나, 시 가디언에 무기를 장착해서 판매하는 것도 허가할지는 알 수 없다고 전했다. 이어 미국이 지난주 대만에 판매대금 등에 관한 자료를 넘겼지만, 거래가 성사되기 위해서는 다음 달에는 의회의 승인을 받아야한다고 덧붙였다. 판매대금은 6억 달러 수준이 될 것으로 알려졌다. 대만은 133억 달러(15조 6400억원) 규모에 달하는 미국산 최신식 무기 거래로 화답하며 밀착을 과시했다.
그러나 이날 미 상원에서는 가까운 동맹이 아닌 국가에 고성능 무인기 판매를 금지하는 법안이 도입됐다. 법안에 따르면 한국, 호주, 뉴질랜드, 일본, 이스라엘과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에만 무인기 판매가 허용된다.
이는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가 2020년 7월 24일 35개국이 가입된 미사일기술통제체제(MTCR)의 규정을 임의로 재해석해 대형 무인기 판매 문턱을 낮추기로 한 데 대한 반작용이다. 미국의 글로벌호크나 리퍼 등 시간당 800㎞까지 비행하는 대형 드론의 경우 MTCR상 고도의 수출제한 대상이었다. MTCR은 대형 드론을 순항미사일로 분류하고 있으며 이에 따라 판매승인이 쉽지 않았다.
미국이 대만에 시 가디언을 판매하게 되면 트럼프 행정부가 "MTCR 규정이 우리의 동맹을 불리하게 해 우리의 억지력을 저해한다"며 이를 재해석하겠다고 선언한 후 첫 거래가 된다. 로이터는 "이미 무역분쟁과 코로나바이러스, 간첩활동과 홍콩 문제 등으로 역대 최악으로 치닫고 있는 미중 관계는 이번 거래가 성사되면 더욱 악화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미국의 싱크탱크인 국제전략문제연구소(CSIS)의 보니 글레이저 아시아 담당 선임연구원은 "중국의 방공시스템은 대만의 무인기를 격추시킬 수 있을 것"이라면서도 "중국은 미국이 대만에 최소형 무기를 판다고 해도 이는 '하나의 중국' 원칙에 대한 도전이라는 이유로 격분할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미국의 공화당 소속 하원의원인 톰 티파니(Tom Tiffany)는 미국과 대만과의 국교 수립을 주장하기도 하였다. 그는 2020년 9월 17일 언론 발표문에서 “미국은 하나의 중국이라는 환상에서 깨어나 자유롭고, 민주적이며, 독립된 대만과 국교 수립에 나서야 한다.”고 주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