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하나의 강대국 외교
시진핑 집권 1기는 주변 외교의 위상을 거의 강대국 외교의 수준까지 끌어올리며 중시하는 모습을 보였다. 2015년 10월 주변 외교 업무 좌담회를 고위급이 참석한 대규모 회의로 개최했고, 매우 적극적이고 빈번한 방문 외교를 통해서 구체적인 움직임을 선보여 왔다. 다년간에 걸친 시 주석의 방문 외교를 살펴보면 중국의 주변 외교 전략에는 몇 가지 공통분모가 존재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첫째, 중국은 방문한 국가들과의 교섭을 통해 중국이 평소 주장하던 국가 관계 형성의 기 본, 즉 주권, 영토, 발전 경로에 대한 상호 존중 및 내정 불간섭 원칙을 관철했다. 이는 자 신의 ‘평화 공존 5원칙’을 현대 국제관계에도 적용함으로써 역사성과 연속성을 보장한 것 이라 평가된다.
둘째, 중국의 빠른 성장으로 인해 풍성한 성과를 함께 누리자는 호혜공영(互惠共榮)의 메시지를 강하게 전파하는 가운데 상호 경제 통합 수준을 높이기 위한 다양한 정책들을 제시했 다.
셋째, 방문한 국가들과 고위급 소통을 포함한 대화 채널의 다변화 및 확대를 추구했다. 이를 통해 국가 간 관계 심화에 필요한 경제적, 정치적 기반을 구축하려 했다.
넷째, 방문국들에 중국의 국가 장학금을 확대하거나 상대국 국민의 중국어 학습 지원을 강화할 것임을 주도적으로 밝혔다. 이는 중국이 주변국과의 관계 심화를 위해 공공외교를 적극 운용할 것임을 나타낸다.
다섯째 중국은 방문한 모든 나라들로부터 ‘하나의 중국’ 원칙에 대한 지지를 확보하려는 성향을 보였다. 이는 다가올 대만과의 통일에 대비한 사전 정비 작업의 성격을 갖는다. 전 세계의 리더로 성장하려는 2050년까지 국가 통일은 필수 불가결한 것으로 간주되고 있으며, 관건 시기를 맞아 주변국들의 지지를 얻고, 미국 등 외부 세력들에게 간섭하지 말 것을 요구하기 위해서다. 이와 같은 다섯 가지 방향은 향후 중국의 주변 외교에 일관되게 적용될 것이다.
또 한 중국은 상대국의 특성에 따른 맞춤형 외교를 선보여 왔다. 예를 들어 중견국인 한국과는 비교적 동등한 입장에서 국경을 초월한 범세계적인 문제의 해결이나 아세안 + 한‧중‧일, 동아시아 정상회의(EAS), 아세안 지역 안보 포럼(ARF), G20 등 다자간 국제무대에서의 정책적 조율과 협력을 도모하고 있다. 또 한 외부 경제 위협에 대한 공동 대처, 그리고 한국이 기술적 우위를 점하고 있는 IT, 에너지, 환경 등의 분야에서 협력사업 지속 개발을 천명한 반면, 상대적으로 경제가 낙후된 개도국들에 대해서는 그 국가의 경제성장에 자신이 든든한 지원군이 되어 줄 수 있다는 메시지와 함께 실질적 지원을 제공하겠다는 입장을 견지해 오고 있다.
중국공산당 19차 당 대회에서 중국은 인류운명공동체 담론을 설파해 주변국을 포함한 전 세계 국가들과의 공존공영 레토릭을 선보였다. 이는 중국식 규범과 가치를 전 세계를 대상으로 확대 전파하려는 의도를 담고 있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정책적 우선순위는 여전히 주변에 있다고 할 수 있다. 중국의 주변 외교는 이미 친밀(親), 성실(誠), 혜택(惠), 포용(容) 개념을 갖추었을 뿐 아니라 경제 통합을 목표로 한 다양한 이니시아티브, 예를 들어 역내 포괄적 경제 동반자 협정(Regional Comprehensive Economic Partnership, RCEP) 구상, 아시아 인프라 투자 은행 설립, 신 실크로도 경제 벨트 구상, 해양 실크로드 구상 등으로 표출되고 있다.
이를 통해 무엇보다 자신과 주변국 간의 관계는 운명 공동체임을 전파하면서 주변국을 끌어당겨 왔다. 향후 시진핑 2기 정부는 주변국의 경계심을 완화하는 데 더욱 주력할 것이다. 다만 그 어느 때보다도 강하고 당당한 중국을 부르짖는 대중의 기대와 열망을 업은 시진핑 정부 임을 감안하면, 향후 남중국해, 대만, 티베트, 신장위구르 등 주권과 영토 및 민족주의와 관련된 이슈가 부상할 때는 중국 정부의 대외적 유연성은 제약 받을 수 있다.
주변국들과의 영토분쟁
2020년 7월 현재 중국은 도대체 얼마나 많은 나라들과 다투고 있는 것일까. 정도의 차이가 있긴 하지만 갈등을 빚고 있는 국가가 최소 15개다. 그것도 ‘동시다발적’으로 싸우고 있다. 정치·경제 분야에서 상호 물리적 영향까지 주고받은 나라는 적어도 4개다. 총영사관 폐쇄라는 사상 초유의 갈등으로 치닫고 있는 미국과는 거의 모든 분야에서 싸우고 있다. 한때 밀월관계였던 영국과도 홍콩 문제로 갈등이 깊어지고 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책임 문제로 공방을 벌였던 호주에 대해서는 ‘쇠고기, 석탄, 와인 수입 금지’라는 보복 조치를 취하였다. 캐나다와는 서로 상대방 국민이 간첩이라며 2명씩 체포했다.
해상과 육상에서 국경을 둘러싼 분쟁 국가는 11개다. 육상에서 4개, 해상에서 7개인데, 최근 2∼4개월 사이 중국이 문제를 삼은 나라만 셈한 수치다. 겉으로 갈등이 터지진 않았지만 수면 아래 웅크리고 있는 나라까지 합하면 훨씬 많아진다. 인도와의 국경 갈등은 인도군 20명이 사망한 사실이 알려지면서 이미 국제적 이슈가 됐다. 인도와는 언제 전투가 발발해도 이상하지 않은 상황이 됐다. 잘 알려지진 않았지만 중국은 6월 초 네팔 영토인 한 마을을 무단 점령했다. 70여 가구가 거주하는 ‘루이 마을’인데, 중국은 이곳이 원래 티베트 영토였다며 군인들을 동원해 점령했다. 이후 네팔이 세운 국경 표지석을 제거해 버렸다.
2020년 7월 초에는 부탄과도 영유권 분쟁을 일으켰다. 여의도 면적 70배 정도의 야생 생물보호구역에 대해 원래 중국 땅이라고 주장하면서 내놓으라고 요구한 것이다. 미얀마와도 불편한 관계다. 7월 2일 미얀마 정부에 따르면 중국 측은 접경 지역에 있는 미얀마 반군 세력과 테러단체에 무기를 지원하는 등 이 지역 분쟁을 조장하고 있다. 일부러 혼란을 가중시켜 이 지역에 대한 지배력을 강화한 뒤 병합하려는 의도라고 미얀마 정부는 의심하고 있다.
해상에서는 남중국해를 둘러싼 6개 나라와 모두 갈등을 벌이고 있다. 대만, 베트남, 인도네시아, 필리핀, 말레이시아, 브루나이다. 중국은 남중국해(350만 km2) 가운데 약 90%에 대해 영유권을 주장하며 “한 뼘의 해상 영토도 양보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2020년 7월 중순 남중국해에서 미사일 3,000발을 쏘는 등 대규모 군사훈련을 벌이기도 했다. 이에 대응해 인도네시아도 25일 남중국해에서 대규모 맞대응 군사훈련을 벌였고, 대만은 군비 증강에 나섰다. 여기에 일본과 센카쿠열도(중국명 댜오위다오) 갈등도 심각하다. 중국 해경은 이곳에 의도적으로 100일 이상 순시선을 보내 영유권 분쟁을 자극하고 있다.
중국은 어제까지 다른 나라의 영토였던 마을을 점령해 자기들 땅으로 만들어 버리고, 바다에서도 비슷한 방식으로 행동하고 있다. ‘힘의 과시’다. 중국보다 더 큰 힘을 가진 미국이 오랫동안 ‘글로벌 리더’로 자리매김한 배경에는 평화와 인권 등 ‘명분’이 있었다는 점을 무시할 수 없다. 중국이 이 싸움에서 이긴다 한들 ‘글로벌 리더’가 될 수 있을까? 중국공산당의 가치가 아닌 세계적 가치에 대한 공감대가 없다면 국제사회에서 ‘외톨이’로 전락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中은 왜 세계무대에서 친구가 없을까?
"대가를 치르게 될 것." 2020년 7월 30일 류샤오밍(劉曉明)주영 중국 대사의 말이다. 류 대사는 트위터 화상 기자회견에서 “중국을 파트너나 친구가 아닌 적으로 다루면 영국은 대가를 치르게 될 것”이라고 했다. 협박이 아니라 “결과를 알려주는 것”이라고도 했다. 5G 통신망 구축사업에 영국이 화웨이를 배제한 것에 대해 한 말이다. 주영 대사가 엄포를 놓을 만큼 영국의 반(反)화웨이 전선 합류는 그만큼 중국엔 충격이다.
2020년 5월 존 마구풀리 탄자니아 대통령은 폭탄선언을 통해 일대일로 사업을 위해 중국서 빌린 100억 달러를 갚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전임 대통령이 맺은 계약이 말도 안 되는 조건이기 때문이다. 차관으로 빌려준 돈으로 항구를 건설하는데 중국 기업이 중국인 노동자들을 고용하여 건설한다. 사용권은 중국이 99년간 갖는다. 그런데도 돈은 탄자니아가 갚아야 한다. 중국인의 항구 내 활동에 아무 조건도 달지 않는다. 마구풀리 대통령은 “술 취하지 않고서야 할 수 없는 계약”이라고 했다.
영국과 탄자니아 두 나라 모두 중국과 척지면 손해가 크다. 영국은 기존에 설치된 화웨이 장비를 뜯어내고 다른 설비로 교체한다. 이에 5G 서비스 출시가 2~3년 늦어진다. 총 25억 파운드(약 3조 7,757억 원)의 돈이 더 들게 생겼다. 탄자니아도 계약 파기로 생길 외교적 문제가 만만치 않다. 그런데도 두 나라는 중국에 등을 돌렸다.
이들만 그런 게 아니다. 유럽에선 프랑스도, 중국에 우호적이던 이탈리아도 화웨이 배제에 나선다. 다른 아프리카 국가도 중국과 건설 프로젝트 취소에 나서고 있다. 시진핑 주석이 지난 2020년 6월 중국·아프리카 특별정상회의에서 채무 상환 기한을 늘려주기로 했지만, 불만은 여전하다. 시 주석의 일대일로(一帶一路:육상·해상 실크로드) 외교 야망에 균열이 가고 있다는 평가가 나오는 이유다. 중국은 왜 진정한 친구가 없을까?
지금까지 중국이 국제사회 영향력을 넓힌 비결은 2가지다. ▶싼값의 기술·노동력 ▶막대한 달러화 파워. 영국이 화웨이에 우호적이었던 이유가 전자다. 아프리카가 중국과 긴밀한 이유는 후자다. 하지만 그것뿐이다. 영국 안보 싱크탱크 왕립합동군사연구소(RUSI)의 엘리자베스 브로 선임연구원의 분석을 보자. 그는 포린폴리시(FP)에 쓴 글에서 “중국은 미국이 수십 년에 걸쳐 여러 국가에 만든 소프트 파워가 전무하다”고 비판한다. “솔직히 중국은 미국만큼 매력적이지 않다. 전 세계에서 누가 자발적으로 중국 노래, 중국 TV 프로그램, 중국 패션을 보고 따라하느냐”는 거다.
중국 영향력의 ‘밑천’은 2020년에 드러났다. 코로나 19로 많은 나라 경제가 큰 상처를 입었다. 여기에 미국의 반중 전선 동참 압박은 날이 갈수록 커진다. 중국이 내세운 이점만으론 중국과 함께 할 이유가 부족해졌다. 오히려 중국에 가지던 불만이 수면 위로 드러났다. 영국과 탄자니아의 반중 행동은 이런 배경에서 나왔다. "돈으로 영향력은 샀어도, 마음은 못 얻은 것" 브로 연구원의 일갈이다. 그는 “중국의 국제 위상 추락은 그동안 중국이 글로벌 상업 네트워크만 구축하고 우정을 쌓지 않은 탓”이라고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