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주의를 중심으로 급진 민족주의에 대한 경계와 반론이 제기됨에 따라 시진핑 체제의 외교정책은 중국 특색과 핵심 이익을 강조하던 데서 점차 온건한 측면을 회복한다. 다시 말해 중국식 강대국 외교정책은 공세적 측면을 부각시켰던데서 공세적 측면과 온건한 측면 사이의 균형을 회복하려는 움직임을 보인다. 시진핑 주석은 서로 상반된 측면을 병렬시키는 것을 모순으로 인식하기보다 서로 다른 측면 사이의 조화를 추구하는 변증법적 세계관을 강조했는데, 그 대표적 사례로 2015년 1월 정치국 집단학습에서 변증법적 유물론의 세계관과 방법론을 견지할 필요성을 지적한 것을 들 수 있다.
취임 초기 외교정책과 관련하여 핵심 이익의 옹호와 강대국 지위를 강조하던 시진핑은 2014년에 들어 점차 세계발전의 대 추세를 인식하고 시대의 흐름을 따라갈 필요성을 강조하는 동시에 일련의 상호 호혜적 협력 조치도 제안하였다. 2014년 7월 시진핑은 모든 국가들이 국제법을 준수할 필요성을 제기했다. 중국이 자신의 이익을 구현하는 데 국제법적 수단을 활용하려는 의도는 왕이 외교부장이 2014년 9월 유엔 총회에서 국제법을 옹호하는 것이 평화 발전이라는 중국의 필요에 봉사한다고 지적한 데서도 확인된다.
2014년 10월에 개최된 중국공산당 18기 4중 전회는 국제규칙의 제정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여 중국의 발언권과 영향력을 증강시키고, 법률적 수단을 통해 중국의 주권‧안보‧발전이익을 수호할 필요성을 지적했다. 그러나 이 회의의 초점은 국제적 규범과 규칙을 중국의 이익에 봉사하도록 변화시키는 데 집중되었고, 따라서 관리들에게 기존 제도와 법을 개혁하고 중국의 이익에 더욱 부합되는 대안적 가치, 원칙 그리고 주장을 적극적으로 옹호할 것을 촉구했다.
아울러 국제법을 준수 할 것인가의 여부는 그 법이 중국의 전략적 목표에 부합하는지에 의해 영향을 받는다는 사실도 지적했다. 이러한 한계에도 불구하고 이 결정은 중국이 자신의 권리를 옹호하기 위해 국제적 규범과 규칙을 형성하는 데 더 많은 자원을 투입하려는 의지를 보여주었다.
2014년 11월 중앙외사업무회의에서도 시진핑은 중국 외교의 균형을 회복하려는 시도를 이어갔다. 그는 중국의 국제적 힘과 영향력을 중대시킬 필요성과 함께 평화발전노선과 전략적 기회를 언급했는데, 이는 두 개의 절대 불가나 전투할 수 있고 승리할 수 있는 군대를 건설할 필요성을 강조했던 이전의 경향과 대비되는 것으로 외교정책의 균형을 유지하려는 의도를 보여주었다.
2014년 12월 ‘FTA 건립 촉진’이라는 주제로 진행된 19차 정치국 집단학습에서도 시주석은 중국이 국제체제의 방관자가 아닌 참여자, 인도자(引導者)가 될 것을 강조했다. 같은 달 왕양(汪洋) 부총리는 미국 시카고에서 행한 연설에서 중국은 미국의 지위에 도전할 생각도 능력도 없다고 지적함으로써 미국의 우려를 완화시키려 들었다.
2015년 들어서도 국제체제의 개혁가이자 수호자라는 이중적 정체성을 강조하려는 움직임이 계속되었다. 왕이 외교부장은 2015년 2월 유엔에서 “중국은 국제질서의 참여자이고 수호자이자 개혁가”라고 선언했다. 시 주석 또한 2015년 9월 유엔 연설에서 국제체제에 기여하기 위한 일련의 조치를 발표했다. 구체적으로 그는 기후변화 대응에 31억 달러, ‘남남협력 원조기금’ 설립에 20억 달러, 유엔 평화발전기금에 10억 달러를 각각 출연하고 또 8,000명의 상설 평화유지군을 창설할 것을 공약했다. 그는 또 영국 방문을 앞두고 가진 기자회견에서 중국이 세계의 평화와 발전을 위해 노력할 것이며 세계 경찰이 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2015년 12월에 채택된 파리기후변화협약과 관련해서도 중국은 적극적으로 임하였다. 이는 2009년 코펜하겐 기후회의에서 취했던 입장으로부터의 분명한 태도 변화였다. 당시 중국은 역사적 책임이 있는 선진국이 먼저 행동해야 한다는 입장을 취함으로써 합의 도출을 무산시켰다. 비록 중국이 2020년까지 개도국에 감축 의무를 면제해준 도쿄의정서를 근거로 제시했지만, 세계 최대의 탄소가스 배출국이라는 사실 때문에 비난의 대상이 되었었다.
그러나 2015년에는 중국이 가스 배출량을 2030년부터 감축하고, 화석연료에 대한 의존을 감축시키며, 최빈국의 대응을 돕겠다고 나섬으로써 합의 도출에 기여하였다. 이러한 일련의 조치는 중국의 자신감을 반영하는 것이자 중국의 강대국 외교정책이 공세적 측면뿐 아니라 온건한 측면을 회복함으로써 보다 복합적으로 변화했음을 보여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