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광양회(韜光養晦)에 대한 비판
급진 민족주의의 확산은 외교정책의 방향을 주도해온 도광양회에 대한 비판으로 이어졌다. 도광양회는 2000년대 들어서면서 이미 서로 다른 방향으로부터의 공격에 직면했다. 그 배경에는 도광양회에 존재하는 불분명성과 함께, 중국의 국력 증대가 있었다. 국력의 증대와 함께 중국 안팎에서 중국위협론과 중국역할론이 동시에 제기되었고, 중국 또한 일부 국제적 이슈에서 적극적인 역할을 수행하기 시작하면서 도광양회에 대한 비판이 촉발되었다.
도광양회에 대한 비판은 크게 두 개의 서로 다른 방향으로부터 왔다. 먼저 국제주의자들을 중심으로 도광양회가 중국의 국가 이미지 형성에 불리하게 작용한다는 주장이 제기되었다. 도광양회 전략에 관한 논쟁을 촉발시킨 베이징 대학의 예즈청은 도광양회가, 외교정책에 대한 생각을 통일시키는 데 중요한 작용을 했다는 사실을 인정하면서도, 중국에서 은인자중(隱忍自重)으로 해석되는데 반해 외국에서는 와신상담(臥薪嘗膽)으로 이해됨으로써 오해를 불러일으킨다고 지적했다.
즉 아직 힘이 충분히 강하지 않은 중국이 전략적 야심을 도광양회로 은폐하고 있다는 오해를 촉발시킨다는 지적이었다. 그 대표적 사례로 미국이 도광양회를 전략적 기만책으로 간주하고, 이에 따라 부상한 이후의 중국의 진로에 대한 오해와 의구심이 촉발되었다는 사실이 제시되었다. 반면에 민족주의자들은 전혀 다른 방향에서 비판을 제기했다. 우선, 이들은 도광양회가 중국의 이익을 방어하기에는 너무 취약하다고 주장했다. 즉, 도광양회에 근거한 온건한 외교정책이 중국의 안전을 보장해주지 못할 뿐만 아니라 오히려 중국위협론이 끊이지 않고 제기되는 배경으로 작용했다는 비판이다. 여기에 더해 민족주의자들은 세계금융위기 이후 중국과 서구 선진국 사이의 국력 격차가 급속하게 축소됨에 따라 도광양회가 적실성을 상실했다고 규정했다. 즉 국제정세의 변화가 도광양회를 더 이상 지속하기 어렵게 만들었다는 주장이었다.
구체적으로 중국의 부상은 국제적으로 견제와 경계심을 촉발시켰고 심지어 미국은 중국에 대한 압력을 증대시켰다. 이에 따라 중국의 주변 환경이 악화되었고 전략적 인내의 시기는 끝났는데, 이러한 변화가 중국의 외교정책을 전환 시킬 것을 요구한다는 주장이었다. 옌쉐퉁 또한 중국의 부상으로 인해 미국과의 구조적 갈등이 불가피하게 되었다고 주장했다. 중국의 부상이 국력 면에서 미국과 대등해지는 것을 의미하기에, 미국은 이를 수용하지 않을 것이며 중국은 미국의 경계 대상이 되었다. 즉, 양국 사이에 구조적 갈등이 존재하며 이에 따라 중국은 미국의 견제를 받을 수밖에 없게 되었다는 지적이었다.
이는 중국 정부가 유지해온 중국과 미국 사이의 관계가 제로섬적 관계가 아니라는 점을 부정한 것이었다. 그는 현실을 직시하고 미국과의 경쟁에 대비할 것을 촉구했다. 특히 그는 ‘우두머리 역할을 추구하지 않고 어떻게 강대국이 될 수 있는가’라는 반문을 제기함으로써 도광양회를 전면적으로 비판했다. 전직 해군 소장인 양이 또한 도광양회가 이미 불가능해졌다고 주장하면서, 이를 변화하는 세계와 변화하는 중국 사이의 상호관계의 문제로 규정했다.
특히 그는 미국의 전략적 중심이 아‧태지역으로 이동함에 따라 중국에 대한 압력이 증대되었다고 지적했다. 미국의 목표가 중국이 이 지역을 주도하는 것을 방지하는 데 있기에 중국이 겸허하고 신중하며 실용적 정책을 추구하더라도 중국의 부상을 수용하지 않을 것이라는 주장이었다. 이처럼 증대되는 도광양회에 대한 비판은 중국 외교가 전환기에 접어 들었음을 의미한다.
유소작위(有所作爲)와 강대국 외교의 옹호
도광양회에 대한 비판은 유소작위에 대한 옹호로 이어졌다. 때를 기다리기보다 할 일을 해야한다는 유소작위에 대한 강조는 강대국 외교정책에 대한 지지를 의미한다. 즉 중국이 강대국이 되었기에 대담하고 지위에 걸맞는 외교정책을 추구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급진 민족주의자들은 중국이 이익을 추구하기 위해 힘을 사용하는 데 주저하지 말아야 하며 또 국제체제로의 통합을 계속해서 추구하기보다 오히려 국제환경을 형성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처럼 민족주의자들이 도광양회를 공격하고 유소작위를 옹호함에 따라 2010년경부터 중국에서 외교전략의 방향을 둘러싼 논쟁이 전개되었다. 민족주의자들은 조화세계론을 비판하며 강대국 외교의 필요성과 내용, 방식, 전략 등에 관한 논의를 주도했다. 이렇게 촉발된 논쟁은 시진핑 체제가 출범하여 강대국 외교정책을 공식화할 때까지 지속되었다.
옌쉐퉁은 국제무대에서 강대국 지위를 추구할 것을 주장했다. 그는 국가의 지위(身分)가 국제무대에서 어떤 행위를 할 수 있는지를 결정하기 때문에 매우 중요하다고 전제하고, 중국이 부상하고 부흥하려면 더 이상 국제사회에의 편입을 추구해서는 안 되고 국제사회를 다시 구성함으로써 중국의 강대국 지위를 수용하고 또 궁극적으로 환영하도록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는 중국의 국제적 환경은 이제 더 이상 타국의 행위가 아니라 중국의 행위에 의해 결정된다는 인식을 반영한다. 국제사회를 다시 구성하는 가장 중요한 방법으로는 새로운 국제질서를 수립하는 것이 제시되었다.
군 인사들 또한 강경한 외교정책을 옹호했다. 우선, 양이(樣毅) 전직 해군 소장은 대외전략과 관련한 사고를 혁신할 필요성을 강조했다. 그는 조화세계(調和世界)는 숭고한 이상이지만 실현이 어렵다고 규정하고 대신에 전 세계 모든 문제에 적극적이고 전면적으로 개입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국가이익이 확대되어 전 세계로 확장되는 상황에서 갈등은 피할 수 없기에, 국가의 존엄성 및 이익수호와 관련하여 입장을 분명히 표명해야 한다는 주장이었다. 특히 그는 필요할 경우 비판하고 투쟁해야 하며 그렇지 않을 경우 강대국 지위와 존중을 얻기 어렵다고 규정했다.
구체적으로 그는 미국의 재균형과 주변 국가와의 갈등과 같은 중국의 안보이익을 해치는 행위에 대해서 강력하게 대처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향후 3~5년이 마찰, 조정, 적응의 시기가 될 것이라고 전제하고, 이러한 상황에서 극적인 유소작위 전략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구체적으로 그는 미국에 맹종해서는 안 되고, 자신의 목소리를 내는 데 주저하지 말아야 하며, 이로 인해 초래되는 관계의 후퇴를 감내할 수 있어야 비로소 전략적 주도권을 쟁취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즉, 중국이 취약하다는 인상을 경계하기 위해 중국의 핵심 이익을 침해할 경우 전쟁을 할 수 밖에 없음을 알려야 한다는 지적이었다. 이러한 그의 주장은 후일 시진핑 체제에 의해 상당 부분 채용된다. 중국 국방대학의 주청후(朱成虎) 소장은 2010년, 중국과 미국에 대만 문제로 군사적 충돌이 발생할 경우 중국에는 다른 선택지가 없고 핵무기를 사용할 수밖에 없다는 극단적 주장까지 제기했다. 그는 이 공격으로 미국 서부의 도시 100개에서 200여 개가 파멸될 것이라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