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글은 2020년 6월 24일 로버트 오브라이언 국가안보보좌관의 “공산당은 중국인들에게 합당한 존재가 아니다”란 주제의 연설문, 2020년 7월 7일 크리스토퍼 레이 FBI국장의 “미국의 제도를 변화시키려는 중국의 불법행위”, 2020년 7월 16일 윌리암 바 법무장관의 “자유미국 대 전체주의 중국의 대결”에 이어 미국 행정부내 서열 3위인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의 2020년 7월 23일 미 캘리포니아주 요바린다에 위치한 닉슨 도서관 앞에서 ‘공산주의 중국과 자유세계의 미래’를 주제로 한 연설로서 미 정부 고위 인사들의 연설의 결론을 내리는 4번째 연설이다. 그는 미국이 중국을 상대로 50여 년간 추진해온 포용(engagement) 정책의 종언을 공언하면서, “중국공산당으로부터 자유를 지키는 것이 우리 시대의 사명이며, 미국은 이에 앞장서겠다”고 선언했다.
폼페이오 장관은 연설 내내 ‘중국 정부’ 대신 ‘중국공산당(CCP : Chinese Communist Party)’이라는 표현을 썼고, “시진핑은 ‘파산한 전체주의 이데올로기의 진짜 신봉자’”이며 중국에 대해서는 ‘세계 패권 장악에 나선 새로운 전체주의 독재국가’라고 단언했다. 그는 또 “이제 미국은 더 이상 중국과의 사이에 있는 근본적인 정치적·이념적 차이를 무시할 수 없게 됐다”며 “우리가 중국을 바꾸지 않으면, 중국이 우리를 바꿀 것”이라고 밝혔다. 이는 중국공산당 정권을 겨냥한 ‘결별(訣別) 선언’인 동시에 중국공산당 정권교체에 미국이 나서겠다는 의지를 분명히 한 것으로 풀이된다.
폼페이오 장관은 연설에서 “중국공산당을 바꾸기 위해 반체제(反體制) 인사를 포함한 중국인들과 손을 잡고 자유세계의 민주주의 국가들과 새로운 동맹을 추진하겠다” 며 구체적인 방법도 제시했다. 미국 주요 언론들은 이 연설에 대해 “중국을 겨냥한 트럼프 행정부 인사들의 최근 발언 가운데 가장 강경한 수준”이라고 지적했다. 앞서 로버트 오브라이언 국가안보보좌관, 크리스토퍼 레이 FBI 국장, 윌리엄 바 법무장관은 최근 한 달여 동안 이념, 간첩활동, 경제 분야에서 각각 중국의 행태와 문제점을 강도 높고 상세하게 비판했다.
폼페이오 국무장관의 이번 연설은 그 결정판으로 평가된다. 특히 외교 수장(首長)이란 직책이 무색할 정도로 직설적이고 분명한 내용 일색이었다. 이런 이유에서 폼페이오의 이날 연설이 미국의 되돌이킬 수 없는, 새로운 대 중공 정책과 전략의 개막을 선포했다는 관측이 유력하다. 이날 연설문 내용을 중심으로 미국의 달라진 대중(對中) 인식과 향후 정책 방향을 5개 키워드로 분석해 본다.
“더 이상 중국에 대한 ‘맹목적 포용(blind engagement)’은 없다”
폼페이오 장관은 “시진핑이 꿈꾸는 중국의 세기가 아닌 자유로운 21세기를 우리가 누리려면, 중국을 맹목적으로 포용하는 낡은 패러다임은 안 된다. 우리는 그것을 계속해서는 안 되며 그곳으로 되돌아가서도 안 된다”고 말했다. 이런 결론을 내린 배경에 대해 그는 이렇게 말했다. “우리는 중국을 향해 손을 내밀었다. 그런데 중국공산당은 포용정책의 혜택을 많이 입고서도 자신을 먹여 살리고 있는 국제사회의 손을 물어뜯었다. 포용정책은 중국에서 이끌어 내려 한 변화를 가져오는 데 실패했다. 오히려 미국의 정책은 중국이라는 프랑켄슈타인(Frankenstein)을 낳았다.”
메리 셀리가 1818년 쓴 공상과학소설에 등장하는 ‘프랑켄슈타인’은, 자신을 창조해준 인간과 세계를 향해 복수를 자행하는 괴물이다. 오늘날의 중국이 자신을 키워준 미국과 서방을 공격하고 말살하려 하는 가장 위협적인 존재가 됐다는 게 폼페이오 장관의 진단이다. “우리는 중국의 악성 공산주의에 대해 순진했고, 냉전 종식 후 승리에 도취했고, 중국의 평화적 부상이라는 말에 속았고, 우리가 겁쟁이 자본주의자였다. 우리는 다시는 과거로 돌아가지 않을 것”이라고 그는 거듭 다짐했다.
이날 연설 장소는 1972년 미국 현직 대통령으로 공산 중국을 처음 방문해 미·중(美中) 수교(1979년)를 이끌어 낸 리처드 닉슨 대통령을 기념해 만든 곳이다. ‘포용정책’의 태동 현장에서 다시 48년 만에 국무장관이 공식 연설을 통해 포용정책의 종식과 새로운 정책 본격화를 대내외에 천명한 것이다.
중국을 더 이상 ‘정상 국가’로 대하지 않겠다.
폼페이오 장관은 “국제적 약속을 수시로 깨면서 이를 세계 지배(global dominance)의 통로로 삼고 있는 중국을 더 이상 법을 지키는 정상적인 나라와 똑같이 대우할 수 없다”며 과거와 달라진 차가운 대중 인식을 분명하게 표출했다. “중국공산당은 마르크스·레닌주의 정당이며, 시진핑 총서기는 파산한 전체주의 이념의 진짜 신봉자(a true believer in a bankrupt totalitarian ideology)임을 잊지 말고 명심해야 한다. 공산당 통치자들의 궁극적 야심은 미국과의 교역이 아니라 미국을 공격(raid)하는 것이다.”
그는 연설에서 중국군과 기업, 학자·유학생·상사원 등에 대한 견해도 명확히 밝혔다. “중국 인민해방군은 정상적인 군대가 아니다. 그 목적은 중국 국민 보호가 아니며 CCP 엘리트들의 절대 통치 유지와 중국 제국의 확장에 있다.” “중국 기업과의 비즈니스는 다른 기업 거래와 똑같을 수 없다. 중국 기업은 독립된 이사회에 보고하지 않고 공산당의 지원 덕분에 애써 많은 이익을 남길 필요도 없다.” “많은 중국 유학생과 상사원·주재원들은 미국의 지식 재산을 훔치기 위해 미국에 와 있다.”
공산당 간부를 위시한 거의 모든 집단이 중국의 세계 지배를 목표로 움직이고 있는 만큼, 그 실상(實相)을 미국과 전 세계가 정확하게 파악하고 대중(對中) 인식을 완전히 바꾸어야 하며 이를 위해 미국이 앞장서겠다고 폼페이오 장관은 말했다..
“중국을 불신하라. 그리고 검증하라”
“미 육군 복무를 거쳐 연방하원 의원과 CIA 국장, 국무장관 등으로 일하면서 내가 배운 것 하나는, ‘공산주의자들은 거의 항상 거짓말을 한다(Communists almost always lie)’는 사실이다. 그들의 가장 큰 거짓말은 14억 중국인을 위한다는 것이다. 이 14억 명은 오히려 감시받고, 억압받고, 언론의 자유를 위협받고 있다.”
폼페이오 장관은 “대화를 위한 대화 모델을 유지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지만 분명한 것은 (중국과의) 대화가 달라져야 한다”며 “중국공산당을 진짜 바꿀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중국 지도자들의 ‘말’이 아니라 그들의 ‘행동’을 보고 판단하고 대응하는 것”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수 주일 전 하와이에서 양제츠(楊洁篪) 중국공산당 정치국 위원(외교담당)을 만난 일화를 소개하며 이렇게 말했다. “양제츠는 많은 말들을 쏟아냈지만 모두 알맹이가 없는 것들이었다. 그는 과거 미국 정부가 그러했듯이 우리도 중국공산당의 요구에 굴복할 것이라 생각했겠지만 트럼프 대통령과 나는 절대 그러하지 않았다. 더 이상 그들이 하는 말에 속아 넘어가지 않을 것이다.”
폼페이오 장관은 “구(舊)소련을 다룰 때 레이건 당시 대통령은 ‘믿어라, 그러나 검증하라(trust, but verify)’고 했다. 그러나 우리는 중국공산당에 대해선 ‘믿지 말고 불신하라. 그리고 검증하라(distrust and verify)’를 반드시 실천해야 한다”고 했다. 미국이 중국의 수사(修辭)와 선전 공세에 농락당하지 않고 강력한 압박 전략을 펴겠다는 결의인 것이다. 중국이 불신의 대상으로 전락한 것은 자업자득(自業自得) 탓이 크다며 폼페이오는 이렇게 밝혔다. “중국은 우리의 소중한 지식 재산과 사업 기밀을 훔치고 있다. 오늘날 중국은 자국 내에서는 점점 더 권위주의적이고, 다른 곳에서는 자유에 대한 적대감을 더욱 공격적으로 드러내고 있다. 미국 경제와 우리 삶의 방식을 지키는 전략이 필요하며, 자유 세계는 중국이라는 새로운 독재(a new tyranny)와의 싸움에서 이겨야 한다.”